장애인을 위한 와인

2021.05.12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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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을 위한 와인> 


서양의 고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의 <어린 왕자, Le Petit Prince>는

성인들에게 잃어버린 자신의 동심을 동경하면서 시종 공감하고 반성적 상념에 젖어 들게 한다.

이 소설에서 어린 왕자는 세 번째로 방문한 별에서 술고래를 만난다. 

술을 마시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이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서 술을 마신다는 무기력한 술꾼을 만나고는 그러한 어른들이 이상하다고 어린 왕자는 말한다.

건전한 음주문화를 위한 캠페인에 인문학적인 배경을 제공할 수 있는 내용이다.







노르웨이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1863~1944)는 20세기 초에 과도한 음주와 싸움, 정신적인 피로에 시달렸는데 1906년에 그린 <포도주병 옆의 자화상, Selbstbildnis mit Weinflasche>은 어느 카페에서 혼자 와인 병과 잔이 있는 테이블 앞에 무기력하고 멍하게 앉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건전한 음주문화를 위한 캠페인에서 소개할 수 있는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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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병 옆의 자화상, Selbstbildnis mit Weinflasche/ 



건전한 와인의 소비가 선행에도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제 많은 와인 생산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예술과 스포츠를 장려하기도 하고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치유와 생활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며칠 남지 않은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1971년부터 당시의 한국신체장애자재활협회(현재는 한국장애인재활협회)에서 개최해 오던 4월 20일 ‘재활의 날’을 1981년부터 정부에서 ‘장애인의 날’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해오고 있다. 이 날을 ‘재활의 날’로 정했던 것은 4월이 1년 중 모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어서 장애인의 재활의지를 부각시킬 수 있다는 데 의미를 둔 것이며, 20일은 다수의 기념일과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UN은 1981년을 ‘세계 장애인의 해(International Year of Disabled Persons)’로, 이어서 1993년부터 1992년을 ‘장애인을 위한 10년(Decade of Disabled Persons)’으로 선포하였었다. 1993년에는 12월 3일이 ‘세계 장애인의 날(International Day of Disabled Persons)’로 제정되었으며, 2007년에는 ‘세계 장애인의 날’의 영문 표기를 ‘International Day of Persons with Disabilities’로 바꾸었다.



이제 장애인을 위한 와인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시각장애인을 위한 엠 샤푸티에(M. Chapoutier)의 점자 레이블 와인>

1808년에 설립된 프랑스 론 밸리의 와인생산자 엠 샤푸티에는 이 가문의 7대손인 미셸 샤푸티에(Michel Chapoutier)가 1980년대 후반 가업을 계승한 이래 론 밸리의 스타로 인정받고 있다. “만들고 희망하라(Fac et Spera, Do and Hope)”를 가문의 좌우명으로 삼고, 겸손(Humilité, Humility)과 의지(Volonté, Determination)의 정신으로 떼루아를 대하는 엠 샤푸티에는 1991년부터 유기농법을 도입하여 오늘날 유기농 포도재배의 세계적인 리더로 성장하였다.


엠 샤푸티에는 세계 최초로 와인 레이블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를 도입하였다. 오너인 미셸 샤푸티에는 자신의 친구이자 유명한 맹인 가수인 질베르 몽따녜(Gilbert Montagne)가 TV에 출연하여 와인을 구입하기 위해 와인 샵에 갈 때에 도움을 줄 누군가를 데려가야 했다는 이야기를 한 것을 보고는 점자를 레이블에 사용하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된 것은 에르미타주(Hermitage)에 위치한 ‘모니에 드 라 시제란(Monier de la Sizerrane)’이라는 포도밭을 사들이면서였다. 당시 포도밭의 주인이자 시제란(Sizerrane) 가문의 마지막 자손인 모리스 드 라 시제란(Maurice de la Sizerrane)은 사냥 중에 발생한 오발 사고로 9살의 어린 나이에 시력을 잃게 되었으며, 그 자신이 프랑스 시각장애인협회를 창립하였다. 1994년 이 포도밭에서 생산된 와인에 처음으로 점자 레이블이 도입되었는데 이는 이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던 시제란 가문, 특히 모리스 드 라 시제란에게 헌정하는 의미였다. 레이블에 사용하는 점자는 모리스 드 라 시제란이 개발한 약식 점자로서 생산자, 빈티지, 포도밭, 원산지 및 와인의 칼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후 엠 샤푸티에는 1996년부터 모든 와인에 점자 레이블을 도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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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_ <세계 최초의 점자 레이블 와인 ‘엠 샤푸티에 에르미타주 모니에 드 라 시제란’ (레드 와인)> 

오른쪽_ <‘엠 샤푸티에 에르미타주 샹트-알루에트’ (화이트 와인)> 



<독일적십자사의 와인>

독일적십자사(Deutsches Rotes Kreuz e.V.)는 행정지리적인 기준에 따라 많은 지사로 구성되어 있다. 라인란트-팔츠주의 지사(DRK-Landesverband Rheinland-Pfalz e.V.)와 여기에 속한 베른카스텔-비틀리히 지역의 지사(DRK-Kreisverband Bernkastel-Wittlich e.V.)가 각각 44.4%와 55.6%를 출자하여 만든 사회적 기업의 이름은 ‘독일적십자사 베른카스텔-비틀리히 사회복지사(DRK-Sozialwerk Bernkastel-Wittlich gGmbH)’이다. 이 사회복지사는 독일적십자사에 속하면서 장애인들을 고용하고 이들을 위한 수익사업을 하는 20개의 사회복지사 중에 하나다. 베른카스텔(Bernkastel)과 비틀리히(Wittlich)는 각각 독일의 와인산지 모젤에 있는 마을의 이름이다.


‘독일적십자사 베른카스텔-비틀리히 사회복지사’는 다양한 수익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포도묘목 분양과 와인생산이다. 이 사업은 독일에서 가장 비싼 포도밭인 ‘베른카스텔의 닥터(Bernkasteler Doctor)’가 있는 모젤의 마을 베른카스텔-쿠스(Bernkastel-Kues)에서 이루어진다. 적십자사 중에서는 독일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이 회사에서 소유하고 있는 와이너리는 상크트 니콜라우스-호스피탈(St. Nikolaus-Hospital)과 쿠사누스 호프굿(Cusanus Hofgut) 이렇게 두 개인데, 전자는 56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리슬링을 주로 생산하는 이 와이너리들에서 근무하는 장애인들은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기계를 만지지는 못하고 전문적인 일이 아닌 포장, 포도밭에서의 단순한 작업 등의 일을 한다. 그들에게는 임금뿐만 아니라 아침과 점심 식사도 제공되고, 매일 집에서 데려오고 일과가 끝나면 집으로 데려다 주는 서비스까지 제공된다. 연금 등 사회보장보험이 제공되고, 일반 근로자 보다 년 휴가를 5일 더 받는 혜택도 주어진다.


‘독일적십자사 베른카스텔-비틀리히 사회복지사’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85%는 장애자들의 혜택으로 돌아가고 나머지 15%는 비품 구입이나 사업의 확장에 사용된다고 한다. 다양한 와인품평대회에서 좋은 성적으로 입상하고 그 품질을 인정 받아 와인사업 분야의 매출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이 와인분야 사업을 총괄하는 책임자이며 양조전문가인 폴커 엠리히(Volker Emmrich)는 이로 인해서 장애인들에게 전보다 더 많은 경제적 혜택을 줄 수 있어서 보람스럽다고 말한다. 사전에 아무런 연락 없이 그의 사무실에 찾아와 잘 지내느냐고 묻는 장애인들의 순수함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며 필자와의 대화 중에 눈을 적신다. 모젤와인 문화의 전파를 위해서 모젤와인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 박물관 옆에 있는 와인 샵(Vinothek)에서는 일정한 입장료를 내면 그 곳에 있는 약 150종의 와인을 마음껏 시음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아 모젤와인의 홍보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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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사누스 호프굿의 와인 ‘리슬링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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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크트 니콜라우스-호스피탈의 와인 ‘브라우네베르거 유퍼-존넨우어 리슬링 아우스레제 2011’/ 



작년 로리옷(Loriot)이라는 예명을 가진 독일의 연예인이자 아티스트(2011년에 타계)의 작품을 레이블에 담아 4종의 와인을 출품했는데 3일 만에 100,000병이 판매되는 대박을 기록하기도 했다. 레이블 수집가의 열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20배의 가격에 거래되는 진기한 일도 벌어졌다. 이로 인해서 장애인을 위한 선의의 사업이 독일 전체에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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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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