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페트레제(Spätlese)의 탄생

2021.05.12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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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준’의 와인칼럼

‘열 번째’


슈페트레제(Spätlese)의 탄생




지난 7월 18일부터 22일까지 부산가톨릭대학교 와인과정의 최태호 주임교수와 강사인 필자 그리고 수강생의 일부가 독일와인투어를 다녀왔다. 이 와인과정이 금년에 처음 개설되었기 때문에 독일와인투어도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일행중의 일부가 7월 23일부터 26일까지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와인품평회 베를린와인트로피의 심사위원으로 참가해야 해서 부산가톨릭대학교 와인과정 1기의 와인투어는 독일로 정해졌다. 베를린으로 가지 않은 다른 투어참가자들은 독일와인투어 이후 유럽의 다른 국가들을 관광하게 되었다. 따라서 순수한 와인투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반면에 참가자들이 와인투어에 이어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는 장점을 가져 좋은 반응을 얻었다.

독일와인투어는 모젤과 라인가우의 방문으로 구성되었는데 단순히 와이너리만 방문하고 시음하는데 그치지 않고 포도밭 관광, 와인과 예술이 접목된 갤러리의 방문, 기네스북에 두 번이나 오른 와인 라벨 수집가 방문, 독일 최고의 와인과정을 제공하는 가이젠하임대학교(Hochschule Geisenheim University) 견학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전개되었다. 필자가 와인 라벨 수집가인 알프레드 슈타블레(Alfred Stable)씨에게서 약 38,000개의 와인 라벨을 기증받은 것은 현지 언론에도 보도되었다. 가이젠하임대학교에서는 한네스 슐츠(Hannes Schultz) 총장과 금년에 한국을 방문할 예정인 International Wine Business 과정의 욘 한프(Jon Hanf) 주임교수가 직접 우리 일행을 맞이해주고, 한 때 독일연방 하원의원이었던 에릭 슈바이커트(Erik Schweickert) 교수는 독일연방정부의 프로젝트로 자신이 맡아서 추진하고 있는 독일 통일 25주년 기념 와인을 맛보게 해주었다. 일명 ‘통일와인(Einheitswein)’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와인은 화이트와 레드로 생산되어 10월 3일에 선보일 예정인데, 우리 일행은 슈페트부르군더(피노 누아)로 만든 레드 와인을 병입하는 뜻 깊은 순간을 볼 수 있었다. 와인투어의 프로그램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특별한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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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바데너 쿠리어(Wiebadener Kurier)’에 보도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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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젠하임대학에서. 윗 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한네스 슐츠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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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슈바이커트 교수의 소개로 슈페트부르군더로 만든 ‘통일와인’을 맛보며/




독일와인투어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 중의 하나는 라인가우의 유명한 와이너리 게오르크 뮐러 슈티프퉁(Gerog Müller Stiftung)의 예술작품으로 가득 찬 지하 셀러(Kunstkeller, Art Celllar)에서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각 예술작품과 어울리는 이 와이너리의 와인을 시음한 것이었다. 이어서 게오르크 뮐러 슈티프퉁의 오너인 페터 빈터(Peter Winter)씨의 배려로 포도밭에서 그릴 파티를 한 것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낭만적인 경험으로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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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뮐러 슈티프퉁 와이너리의 지하 셀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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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뮐러 슈티프퉁 와이너리의 포도밭에서 열린 그릴 파티/




독일의 와인산지 라인가우를 방문하면 빼놓지 않아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슈페트레제(Spätlese)가 탄생한 와이너리 슐로쓰 요하니스베르크(Schloss Johannisberg)! 약 1,200년의 전통을 가진 슐로쓰 요하니스베르크로 들어서는 가로수 길에서부터 느낄 수 있는 웅장함은 보르도의 그랑 크뤼 샤토 어느 곳에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와이너리 내의 와인 샵에서 가까운 마당에는 ‘슈페트레제 기사(Spätlesereiter)‘의 동상이 반갑게 손님을 맞이해준다. 슐로쓰 요하니스베르크의 CEO인 크리스티안 비테(Christian Witte)가 직접 약 2시간에 걸쳐 포도밭과 지하 셀러를 보여주고 테이스팅을 이끌어 우리 일행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준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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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페트레제 기사 동상 앞에서 슈페트레제의 탄생을 설명해 주는 크리스티안 비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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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로쓰 요하니스베르크의 시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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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음한 와인 리스트. 당연히 슈페트레제도 포함되어 있다./




슐로쓰 요하니스베르크는 1716년부터 풀다(Fulda)에 있는 한 후작주교(Fürstbischof)에 속하게 되는데 1720년에 294,000 그루의 리슬링 묘목을 심었다. 리슬링만 생산하는 슐로쓰 요하니스베르크의 위대한 역사는 사실상 이 때에 시작된 것이다. 당시 포도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해당 관청의 허가가 있어야 했는데 슐로쓰 요하니스베르크만 예외로 풀다의 후작주교의 허락을 받아야 포도를 수확할 수 있었다.  따라서 당시 요하니스베르크의 수도승들은 매년 전령을 풀다로 보내 수확 허락을 받아왔는데 1775년에는 이 전령이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예정보다 14일이나 늦게 돌아왔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전령이 풀다에 도착했을 때 후작주교가 사냥을 떠나서 늦게 돌아왔다는 설과 전령이 도중에 강도를 만나서 늦게 돌아왔다는 설이 있지만 어느 것이 정확한지는 아직까지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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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8년 빈티지의 와인까지 보관되어 있는 지하 셀라의 보물창고 "Bibliotheca Subterranea"/




전령이 늦게 슐로쓰 요하니스베르크로 돌아온 탓에 포도는 많이 귀부병에 걸려 있었다. 그러나 자포자기하듯 포도를 수확하여 만든 와인은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맛있는 달콤한 와인으로 탄생하였다. 바로 슈페트레제가 탄생한 것이다. 와인생산에 있어서 귀부병의 긍정적인 효과를 처음 발견하게 된 것이다. 역사가들은 이미 1730년대에 여러 포도 재배자들이 포도의 당분을 더 얻기 위해 포도가 약간 귀부병에 걸릴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다고 적고 있지만, 계획적이고 본격적으로 포도를 늦게 수확하여 귀부병에 걸린 포도를 수확하기 시작한 것은 1775년의 사건 이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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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로쓰 요하니스베르크의 포도밭/




여기에서 혼동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시에 사용했던 슈페트레제라는 개념과 현재 독일와인의 등급에서 사용하는 슈페트레제의 개념에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에는 슈페트레제가 늦게 수확하여 귀부병에 걸린 포도들도 사용하여 만든 고급와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오늘날의 베렌아우스레제(Beerenauslese)나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Trockenbeerenauslese)에 해당하는 와인을 의미했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법적인 근거도 있다. 즉, 포도즙의 당도(왹슬레, Öchsle)가 중요한 기준이 되는 독일와인의 등급체계는 1969년 7월 16일의 와인법 개정에서 도입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슈페트레제가 처음 탄생한 후의 개념은 현재의 슈페트레제와는 다른 개념으로 사용된 것임에 틀림이 없다. 현재 독일와인의 등급에서 사용하는 개념인 슈페트레제는 알코올 도수가 최소 7%이어야 하고(독일와인법 제17조 1항), 늦게 수확한 잘 익은 포도로 만든 와인을 의미한다(독일와인법 제20조 4항 1). 그러나 실제로 수확시기는 와인의 등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고(언제가 늦은 수확시기이냐를 정할 수가 없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웩슬레(Öchsle)다. 독일에서 포도즙의 당도를 측정하는 기준인 웩슬레는 1리터의 포도즙(Most)이 1리터의 물보다 섭씨 20도에서 몇 그램 더 무거우냐에 따라 결정된다.

많은 사람들은 슈페트레제를 스위트한 와인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슈페트레제를 드라이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와인 라벨에 일반적으로 ‘trocken(트로켄, 드라이한 맛)’이라고 표시를 한다. 미하엘 아피츠라는 독일 아티스트는 친구인 파트릭 쿤켈(Patrick Kunkel) 및 그의 아버지 에버하르트 쿤켈(Eberhard Kunkel)과 함께 1988년에 ‘Karl - Der Spätlesereiter(슈페트레제 기사 칼)’이라는 코믹한 만화책을 출판하여 독일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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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책은 영어와 일본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필자는 몇 년 전 라인가우의 와인 국내 프로모션을 위해 이 만화책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배포하는 것과 라인가우 와인에 대한 공로가 있는 와인전문가에게 ‘슈페트레제 기사’ 작위를 수여할 것을 라인가우 와인협회에 제안한 적이 있었지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한 것이 아직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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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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