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기다림이다(1)

2021.05.13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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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기다림이다(1)


여러분약속장소에서 누군가를 기다려본 경험 있으시죠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기다려본 적도 있으시죠황지우 시인은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를 통해 기다림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일즉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다는 것을 믿는 일이라고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곳에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인간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와인에서도 기다림은 아주 의미가 있어요독일의 작가인 프리드리히 폰 보덴슈테트(Friedrich von Bodenstedt, 1819~1892)는 의미 있는 말을 남겼지요. “겨울에는 봄을 기다리며 / 와인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 봄이 오면 / 봄이 왔음을 기뻐하며 다시 와인을 마신다.”라고겨울은 힘든 세월각고의 시간을 상징하기도 하고봄은 결실 혹은 희망을 상징하기도 합니다와인을 마시며 어려움을 이겨내고와인을 마시며 즐거운 순간을 만끽하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어쩌면 폰 보덴슈테트는 겨울에는 햇와인을봄에는 조금 더 숙성된 와인을 마시는 기쁨을 노래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여하튼 폰 보덴슈테트는 봄을 기다렸지만아주 추운 겨울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어요특히 아이스바인 생산자가 그렇답니다독일에서는 영하 7도 미만이 되어야 아이스바인을 만들기 위해 얼어붙은 포도를 수확할 수 있어요그들에게 아이스바인을 만들 수 있느냐의 문제는 자연에 달려있는 셈이죠아이스바인으로 유명한 독일 모젤에 있는 와이너리 보틀러(Bottler)를 방문했을 때 매년 아이스바인을 생산하기 위한 기다림에 대해서 설명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와인 병을 오픈한 뒤 와인이 그 향과 맛을 제대로 뽐내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에 대해서 자주 말합니다이 순간을 위해서 디켄팅이나 브리딩이라는 방법을 동원하기도 합니다숙성이 필요한 와인의 경우 와인 병을 오픈하기까지의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그러나 와인 병을 오픈하고 잔에 따른 뒤에 그 향과 맛을 즐기기 전의 짧은 순간의 기다림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레드와인 한 잔을 따라 그것을 바라보는 헤르만 헤세의 모습을 한 번 보시지요옷차림 때문에 하나의 의식을 치르는 모습 같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얼마나 행복감과 기대감에 젖어 와인의 향을 맡아 보고 입에 넘길 순간을 기다리며 즐기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진정한 와인애호가의 모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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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독일의 화가 에두아르트 폰 그뤼츠너(Eduard von Grützner, 1846~1925)가 그린 멋진 음료(Ein herrliches Getränk)’를 보면 와인을 만드는 수도승이 이제 와인이 마시기에 적당한 상태가 되었나를 관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작품의 제목이 암시하듯 흐뭇한 모습이 역력합니다발효와 숙성의 과정을 기다리는 수도승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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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어떤 순간을 기다릴까요자신의 향과 맛을 가장 잘 뽐낼 수 있을 때 소비자가 마셔주기를 기다릴 것입니다프랑스의 작가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 <악의 꽃>에 수록된 시 포도주의 영혼(L'Ame du Vin)에서 일에 지친 사람의 목구멍에 떨어질 때면 / 나는 그지없는 기쁨을 느끼고, / 그의 뜨거운 가슴속이  싸늘한 지하실보다 / 훨씬  좋아하는 아늑한 무덤이기에.”라고 적고 있습니다정말 멋진 표현 아닌가요와인을 마신 자의 가슴속이 와인 셀라보다  좋은 무덤이라는  표현이요보들레르의 시에서 영감을 얻은 장홍 박사는 <와인문화를 만나다>에서 와인의 탄생 목적은  하나죽음이다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마셔지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그러나 행복하고 고상한 죽음이 있는가 하면비참하고 억울한 죽음도 있다우리는 와인의 행복하고 고상한 죽음을 위해 최소한의 노력과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와인을 제대로 알고 즐겨야 하는 것이다…. 절정에 이른 고급와인은… 황홀함을 준다이는 마시는 사람에게 기쁨을 듬뿍 선사해 주는행복하고도 고상한 와인의 죽음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그와 함께 외칩니다. “와인의 고귀한 죽음을 위하여건배!”


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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