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인문학(3)

2021.05.13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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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인문학(3)

 

우리나라에서 인문학의 열풍이 불게 된 배경과 인문학의 정의에 대해서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서 기고했다이번에는 왜 와인분야에(인문학이 필요한지에 대한 문제를 다뤄보기로 하자.

 

사실 인문학의 핵심분야인 언어문학역사 그리고 철학은 이미 와인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서 인문학적으로 와인을 접근한 글뿐만 아니라 책이 국내의 저자들에 의해서 출판되기도 했다예를 들면 고형욱의 <와인의 문화사>, 최 훈의 <와인으로 읽는 세계사 - 역사와 와인등을 들 수 있다. ‘김준철 와인스쿨을 운영하고 있는 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은 <와인 인문학 코스>를 개설하고 있으며 필자는 와인 인문학을 주제로 대학과 기업에서 강의하기도 한다일반 인문학 서적들 중에서 예를 들면 <언어 천재 조승연의 이야기 인문학>에는 샴페인의 어원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이와 같이 근본적으로 와인과 무관한 글에서도 와인과 관련된 인문학적인 내용을 접할 수 있다.

 

나는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와인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인문학의 핵심분야는 아니지만 미국의 록펠러 재단(Rockefeller Foundation)의 후원으로 설립된 인문학 위원회(Commission on the Humanities) 1980년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예술도 인문학 분야에 포함된다샤토 무통 로칠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와인 레이블에 담아 마케팅에 성공하고 있는 것은 인문학을 와인에 도입한 가장 잘 알려진 케이스일 것이다.

 

기바야시 신과 기바야시 유코 남매가 아기 다다시라는 필명으로 스토리를 쓴 총 44권의 만화책 <신의 물방울>은 일본 최고 와인평론가 간자키 유타카가 “12사도로 명명한 12병의 위대한 와인과 그 정점에 서 있는 신의 물방울이라는 한 병의 와인을 맞추는 자에게 모든 재산을 상속하겠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타계한 뒤 친아들 시즈쿠와 양아들인 와인평론가 토미네 잇세 사이에 벌어지는 대결을 다루고 있다일본 고단샤의 주간 만화잡지 <모닝>에서 2004 11월부터 연재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서는 2005 12월부터 2014 12월 말까지 총 44권으로 번역출판된 이 만화책은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세계적인 와인 잡지 ‘디캔터(Decanter)’는 지난 2009 6월에 발표한 세계의 와인시장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50명의 리스트에 <신의 물방울>의 작가 두 명을 포함시켰다무엇보다 ‘디캔터는 이 일본 만화를 지난 20년간 출판된 와인 관련 서적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다고 평가했다.

 

아기 다다시는 2007년에 국내에서 출판된 책 <와인의 기쁨>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딱딱한 설명과 포도 배합 비율만 가득한 기존 와인 가이드 같은 책이 아니라 추리소설처럼 독자들이 다음에 등장할 와인을 궁금해 하고와인 맛을 상상하게 만든다면 성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신의 물방울>을 만들었다고.

 

또한 “나와 남동생은 실제로 와인을 마시면서 옛날 경험들을 떠올린다옛날에 먹었던 프랑스 요리부터 예전에 읽었던 어린 시절 즐겨 들었던 음악인상 깊게 봤던 그림 등이 내 안에 새겨져 있어그것들이 와인의 맛과 함께 다시 연상되는 것 같다어릴 적 많은 경험을 했다는 것은 와인뿐 아니라 표현하는 사람으로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적고 있다.

 

추리소설 같은 Fun의 요소와 작가의 인문학적인 소양이 <신의 물방울>의 성공요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와인에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를 보다 본질적으로 누구보다도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은 헤르만 헤세라고 생각한다그의 첫 장편소설 <페터 카멘친트>에서 헤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와인도 모든 귀중한 재능이나 예술과 마찬가지다그것은 사랑을 받고요구 받고이해되며노력에 의해서 얻어야만 한다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와인은 수많은 사람을 죽인다늙게 만들고그들에게 있는 영혼의 불길을 꺼버린다.

 

그러나 와인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축제에 초대하고 그들에게 행복의 섬으로 가는 무지개의 다리를 놓아준다그들이 피로를 느끼면 그는 머리 밑에 베개를 베어주며그들이 비애의 함정에 빠지면 친구처럼위로하는 어머니처럼조용히 정답게 안아준다그는 혼란스러운 인생을 위대한 신화로 바꾸어주고큼직한 하프로 창조의 노래를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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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5경에 그려진 한스 폰 아헨(Hans von Aachen)의 작품 자화상(Selbstbildnis)>

 

 

헤세는 이와 같이 와인애호가들이 와인과 더불어 사는 삶을 어떻게 영위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던지며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이에 대한 정답은 각자 스스로 찾아야 한다인문학의 핵심분야 중에서도 철학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예를 들면 독일의 계슈탈트 심리학자인 칼 둔커(Karl Duncker)가 제시한 객체(Object)와 즐거움(Pleasure)의 관계에 대한 이해 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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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Wine Writer / Consultant / Lecturer

Asia Director of Asia Wine Tr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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