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주의 와인칼럼] 우리가 로버트 파커와 같을 수 없는 이유

2021.04.17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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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로버트 파커와 같을 수 없는 이유

“팀을 이뤄서 와인을 심사할 때에는 개인의 기호는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즉 완벽하게 서로 다른 각자 성향을 어떻게 합의할 것인가? 
어떤 심사관은 특정한 와인이 가지는 전형성 때문에 그 와인이 좋을 수 있고 다른 심사관은 바로 그 특성이 싫어하게 된 원인이 될 수 있다. 이 모든 걸 반영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 따라서 집단적으로 테이스팅 할 경우 개인 취향을 담은 테이스팅 코멘트는 존재할 수 없다. 
이렇기 때문에 집단 테이스팅은 와인의 캐릭터를 담아낼 수 없고 일부 콩쿠르 같은 데서 (개성 없는)평범한 와인이 수상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다.”는 로버트 파커의 말이다. 




로버트 파커의 도발
자극적인 풀 냄새 때문에 호주와 뉴질랜드의 카베르네 소비뇽에 대한 혐오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평을 한다. 그것도 자신의 저서에 실을 수 있는 솔직함을 가진 와인 평론가가 몇이나 될까? 듣기만해도 가슴 떨리는 기라성 같은 특급 와인들에게 초등학생 받아쓰기 시험 채점하듯 100점 만점기준의 점수를 줄 수 있는 용기 있는 평론가가 몇이나 될까? 로버트 파커가 와인평론가로서 명성과 신망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애독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이처럼 와인 맛에 대한 고집스런 철학이 있었고 이를 과감하게 드러낼 수 있는 솔직함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그간 두루뭉실하게 알만한 사람들만 알아듣는 난해했던 기존 평론 관행에 전광석화 같은 통쾌함을 날렸을 것이니 말이다.



주관적 기준?  객관적 기준? 
이처럼 로버트 파커는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그걸 점수에 반영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물론 그의 개인적 취향을 두고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를 적용하는 우리의 자세이다. 와인을 판단할 때는 주관적인 기준을 따라야 할까? 아니면 객관성을 유지해야 할까? 앞에서 언급한 그의 말들을 들어보면 로버트 파커는 주관적 평가하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권하는 것 같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와인 테이스팅을 배우고 싶고 나아가 자신이 마신 와인에 대한 느낌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다면 당분간 객관성을 유지한 테이스팅 기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좋았다”, “맛있다”와 같은 주관적인 평보다는 와인의 떼루아와 양조를 되짚어볼 수 있는 관능검사에 가까운 테크닉이 필요하다. 아마 로버트 파커도 자신의 주관적 관점을 견지할 수 있을 때까지 정통적 테크닉 기법을 무수히 연습하고 훈련했을 것이다. 그의 테이스팅 노트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테이스팅 기법의 두 가지 사례
테이스팅 기법과 관련해서 여러 교재에서 다루어 왔고, 와인교육기관에서도 고유 기법에 따라 와인 테이스팅을 실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 테이스팅 기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영국 WSET 교육기관 일명 ‘영어식 기법’과 ‘프랑스어식 기법’이다. 영국 WSET 기법은 주로 영어권 국가들에서 자주 사용되는 기법이며, 프랑스어식 기법은 주로 유럽 국가들에서 비슷한 형태로 사용된다. 아래에 소개된 테이스팅 노트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쏘테른
출처 『La degustation』 (Pierre Casamayor, HACH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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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리슬링 아우스레제
출처 『WSET Diplomas Assessment 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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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La degustation』(시음)책과 영국 WSET 교재의 SAT 일부를 발췌해서 비교해 보았다. 두 가지 테이스팅 기법 모두 와인 심사를 비롯해 와인업계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테크닉이다. 외관, 향 그리고 맛이라는 큰 범주에 따라서 테이스팅을 진행하는 기본적인 틀은 비슷하지만 세부적인 항목에 따라서 각각 장단점이 있다.

『La degustation』 달리 말해 ‘프랑스어식 기법’은 시간순서에 따른 테이스팅 표현이 특징이다. 또한 번역을 통해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용어가 좀 더 현학적이며 추상적이다. 이 같은 표현을 익숙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과 경험이 필요하지만 대신 고품질 우수한 와인을 표현하기에는 유리하다고 본다. ‘프랑스어식 기법’이 와인의 품질이나 특징에 따라서 세부항목이 유연하게 적용되는 반면 WSET SAT 즉 ‘영어식 기법’은 당도, 산도, 무게감, 알코올 등의 세부항목이 모든 와인에 일관되게 적용되는 점이 다르다. 이 기법은 매 와인마다 비슷한 항목으로 접근하다 보니 약간 도식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와인 테이스팅을 배우기에는 체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서 장점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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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팅 기법을 적용한다면
두 가지 테이스팅 기법의 차이점은 몇 년 전 경험을 들어 설명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ASI에서 주최하는 아시아 오세아니아 소믈리에 경기대회와 세계 소믈리에 경기대회를 관전한 적이 있다. 후보로 올라온 각국 대표 소믈리에들은 사용하는 언어(영어, 불어)에 따라서 앞에서 언급한 두 테이스팅 기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먼저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자면, 제한된 시간 안에 정보를 빠르게 전달해야 하는 대회 성격상 ‘프랑어식 표현’은 템포가 느리고 표현이 모호해 보였다. 
좀 더 편안하고 느긋한 분위기였다면 우아하고 훌륭했을 표현들이었는데 말이다. 반면에 ‘영어식 표현’은 문맥이 짧고 ‘High acidity, medium bodied, medium tanin’ 등과 같은 단어가 주는 정보성 특징 덕에 심사 점수를 얻기에 좀 더 유리하지 않을까 싶다(어디까지나 개인적 의견이다). 그러나 상황을 바꿔서 여러분이 부르고뉴 그랑 크뤼 올드 빈티지 와인을 빈티지별로 테이스팅 할 기회가 있다면 프랑스어식 표현기법을 추천하고 싶다. 이런 와인들의 복합미와 탐미적 장점을  High, medium과 같은 표현에 묶어두기에는 아깝기 때문이다. 피카소는 어느 글에서 자기의 그림을 어린아이처럼 그리는데 오십 년이 걸렸다고 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장난스럽게 그리는 자유함(?)을 얻기까지 수많은 테크닉을 연습한 것처럼 자신의 와인 취향을 자신 있게 드러내는 자유를 얻으려면 객관적 테크닉을 배우는 것은 꼭 필요한 과정이다. 여러분이 와인을 배우는 동기와 상황에 맞게 적절한 테이스팅 기법을 선택하여 꾸준히 연습해나가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내 취향은 잠시 보류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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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백은주 (Eunkoo Baik)
(경희대학교 관광대학원 와인, 워터, 티 소믈리에 전문가 과정 교수 / 부산가톨릭대학교 와인 소믈리에 전문가 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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