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 Wine Trophy 2016 참가 후기
Asia Wine Trophy 2016 참가 후기
“정말 이런 식으로 할거야? 정민영, 이정도 밖에 안돼?”
도대체 이게 무슨 사연인지 지난 10월말 대전에서 개최된 Asia Wine Trophy 2016으로 돌아가보자.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출발하는 그날도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처럼 애들은 이불 속에서 침 흘리며 자고 있던 새벽시간이었다. 전날 꾸역꾸역 챙겨놓은 여행용 가방에 추가적으로 아침에 사용한 세면도구, 당 떨어지면 먹을 응급 조치용 초콜릿 두 개 그리고 게임하는 아들한테 비행기에서 볼 만한 액션 영화 세 편 다운받아달라고 부탁해놓은 타블렛 PC를 마지막으로 대전발 여행가방은 꾸려졌다. 알람을 너무 일찍 맞춰놓았는지, 준비를 다하고도 충분한 시간이 남았다. 자고 있는 애들이 깨지 않도록 와이프와 조용히 작별 인사(?)를 하고 아침 7시 18분에 공항 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일요일 이른 아침인데도 공항 가는 버스 안에는 제법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짐 가방을 짐칸에 얹어놓고 나도 자리를 잡았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대각선 10시 방향에 노부부가 손을 꼭 잡고 같은 각도의 창 밖을 쳐다보고 말없이 가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공항까지 차로 직접가면 10분이면 공항 관제탑이 보일 정도로 멀지 않다. 버스로 가면 조금 돌아가기 때문에 20분 정도가 소요된다. 버스가 공항에 도착해서 간단한 짐을 가지고 탄 승객들이 먼저 내리고, 조금 전 대각선에 앉아계시던 노부부가 내 앞에서 천천히 내렸다. 그런데 앞에서 내린 어르신이 가방에서 자연스럽게 500ml짜리 캔 맥주를 꺼내시더니 “치~익”하고 따시는 것이다. 그리고는 사우나에 땀 좀 흘리고 나와서 마시는 맥주 량이 할아버지 목을 타고 온 몸을 적시는 것 같았다. 캬~~~ 멋있다! 다른 사람들 눈치 안보고, 본인 생각대로 행동하시는 모습. 하지만 버스 안에서는 가방 속의 맥주를 꺼내지 않은 절제된 모습. 남자네 남자, 상남자! 이렇게 나의 아시아와인트로피 2016 막이 올랐다.
비행기 좌석에 붙어있는 영화들을 이리저리 아무리 돌려봐도 흥미를 끄는 영화는 없었다. 슬쩍 일어나서 가방 안에 있는 타블렛 PC를 꺼냈다. 아들이 영화를 다운 받아준 폴더를 열었다. 내가 부탁한대로 3편의 영화가 들어가 있었다. 007, 미션 임파서블 그리고 아메리칸 스나이퍼.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이미 본 것 같은 영화 제목들이다. “그래도 007은 여러 시리즈가 있으니깐”이라는 기대감으로 영화를 열자 007 Skyfall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내가 봤던 영화가 아닐 수도 있으니깐 하는 기대감에 폴더를 까보니 역시나 내가 봤던 007이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도 왠지 낯설지가 않은 영화 제목이다. 그래도 아닐 수가 있다는 희망에 폴더를 까보니 나의 희망은 아메리칸 스나이퍼에게 총 맞은 것처럼 전멸해버렸다. 삼세번이라고 하니깐… 그런데 미션 임파서블 폴더를 여는 순간 “미션 임파서블 3”라는 제목을 보고 그냥 타블렛 PC의 전원을 꺼버렸다. 이코노미 좌석이 점점 더 좁게만 느껴지는 길고 긴 여정이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7시 15분, 아무리 빨리 대전에 도착을 해도 11시 30분이다. 불안하다. 늦을 것을 각오하고 갔지만, 한국에 도착을 하니 각오가 있었던 자리는 어느새 불안이 차지하고 있었다. 아시아와인트로피의 와인심사는 오후에 시작이 된다. 하지만 오전에는 심사에 필요한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는데 참석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와인심사에 경험이 있는 심사위원들은 이미 전체적인 내용을 알고 있겠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오리엔테이션 또한 행사의 일부이기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에 내내 초조하기만 했다.
KTX의 도움을 받아 대전에 도착했다. 택시 안에서는 기사분이 한국 정치, 대전 버스 전용차로에 대해서 열변을 토해냈지만, 불안한 마음에 내 귀에는 카자흐스탄어로만 들렸다. 그나마 다행히 호텔 체크인을 끝내고 점심을 먹고 나서 오후에 진행이 되는 심사에는 늦지 않게 자리에 앉을 수가 있었다. 나의 심사 테이블은 7번. 대전에도 늦게 도착하고, 오리엔테이션에도 참석하지 못했지만, 심사 테이블에는 제일 먼저 도착했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다른 심사위원들의 국기를 시계방향으로 스캔을 했다. 호주 – 한국 – 스페인 – 한국 – 중국 – 한국 - 미국 순이다. 라자니아처럼 중간중간에 국적을 잘 배열해 놓은 것을 보고, 운영진의 치밀한 준비에 늦게 도착한 내가 미안한 마음이 더 들었다.
아시아와인트로피 첫 날에 열린 심사위원 대상 브리핑
오후 12시 50분. 대부분의 심사위원들이 자리에 착석을 하고, 간단하게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와인심사는 예정시간대로 오후 1시에 간단한 브리핑과 함께 시작이 됐다. 한 번 심사에 대략 17종 전후의 와인. 첫 날 오후에는 세 번 심사를 하니 약 50종의 와인이 심사위원의 평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팀의 리더였던 데니스(호주)는 꼼꼼한 성격이었다. 급하지도 않으면서, 정확하게 우리 팀을 이끌었다. 필요하다면 장시간의 토론 또한 제안을 하기도 했다. 발생할 수 있는 심사위원간의 큰 점수차에 대해서는 충분히 의견을 수용해서 좁히는 노련함 또한 가지고 있었다.
우리 팀은 흥미 있는 토론 하나에 대해서 많은 시간을 차지한 주제가 있었다. 내가 다른 심사위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나의 의견을 내 놓았다. “여러분, 사실 저는 와인을 서빙하는 사람이 가려진 와인 병을 들고 와서 와인 잔에 따를 때, 병의 전체적인 부분은 가려지지만, 병 입구부분 그러니까 와인 병을 스크류 캡으로 막았는지, 아니면 코르크를 사용했는지에 따라서 기본적인 마음이 흔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때요?”라는 화두를 던졌다. 우리 팀 심사위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스크류 캡, 그리고 synthetic cork의 와인 보존 효과 그리고 유럽에서 사용되고 있는 코르코의 장, 단점에 대해서 각 심사위원의 생각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덕분(?)에 시간이 길어져 심사를 끝나는 시간도 꼴찌에서 두 번째로 와인 심사를 마치게 됐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속에 첫 날의 와인심사를 무사히 마쳤다. 저녁 식사는 아시아와인트로피 주최측에서 마련해 준 공연과 함께 공식만찬으로 진행이 됐다. 공식만찬이 끝나자 몇몇 지인들이 내가 먼 길에서 왔다고 저녁 술자리를 마련해 주어서 우리는 감자탕 집에 다시 둥지를 틀었다. 캬~~ 이게 얼마 만에 마셔보는 쐬주냐! 진하게 빠진 뼈다귀 국물에 시래기 나물! 환상의 마리아주였다. 술자리가 길어질 것 같았지만, 다음날 와인 심사에 지장이 있을 까봐서 밤 10시 30분경에 우리는 술자리를 끝내고 호텔로 돌아왔다.
아시아와인트로피 공식 환영만찬
잠을 잘 준비를 끝내고 시계를 보니 밤 11시가 안됐다. 그러면 프랑스 시간으로 오후 4시가 안됐는데 잠이 올 리가 없었다. 통돼지 바베큐 돌아가듯 침대 위에서 이쪽으로 한 번 누웠다가, 반대쪽으로 누웠다가, 천장보고 있다가… 아무리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질 않았다. 그러는 사이 시계의 숫자는 3시 5분이라고 찍힌 것까지 보고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눈이 떠져서 다시 시계를 보니 5시 25분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와인 심사는 9시 30분에 시작이니까 7시 반쯤 일어나서 아침 먹고 천천히 준비해서 가면 되겠다.”라고 생각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다시 잠들고 3분이나 지났을까? 고추 잠자리 꼬리를 잡았을 때 잠자리가 날개 짓을 하듯 “브~으즛, 브~으즛”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뭐지? 전화기에 심카드도 없어서 전화 올 때도 없는데… 그런데 순간적으로 왜 이렇게 “브~으즛, 브~으즛” 침대 시트 위에서 울리는 전화기 진동소리가 불안한 걸까?
뭐지? 하면서 전화기를 드는 순간 “박찬준 대표”라는 이름과 함께 보이스톡이 울리는 것이다. “여보세요”라고 말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2초도 안됐을 것이다. 그런데 2초도 안 되는 시간에 정말 수많은 상상이 뇌리를 스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기에서 터져 나오는 80 데시바의 굉음 “정말 이런 식으로 할거야? 정민영, 이정도 밖에 안돼?”
끊긴 전화기에 찍힌 시간은 9시 40분. 나는 3분 더 잔 것 같은데, 4시간 20분이 흘러간 것이다. 잠옷바람으로 행사장으로 뛰어가도 늦었는데, 세수라도 하고 가려면 피박에 광박까지… 더군다나 옷을 고를 시간조차 없어서 전날 감자탕집에서 입었던 옷을 그대로 걸쳐 입고 행사장으로 출발하는데 비는 또 왜 그렇게 많이 내리는지… 비에 젖은 머리카락 많지 않은 뚱뚱한 남자! 거울을 보지 않아도 뻔한 모양새다. 그렇게 훌륭했던 감자탕 국물에 시래기 냄새는 옷에 박혀서 비에 젖으니 슬금슬금 메주 뜨는 냄새가 피어 오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리고 누구를 탓하겠는가? 국제적인 행사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 팀원들에게도 민폐! 입이 열한 개라도 변명할 여지가 없는걸…… 심사 둘째 날이 빨리 지나가기만 바랬다. 그 큰 자극이 있었던 덕분에 셋째 날, 넷째 날은 호텔 프론트에 모닝콜 부탁, 내 타블렛 PC 알람, 와이프에게 한국으로 아침에 전화로 알람, 이렇게 3중 장치를 하고 나흘간의 아시아와인트로피 2016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많은 언론과 방송국의 관심의 대상이었던 아시아와인트로피
나흘간의 와인 심사가 끝이 나고 대전 Wine & Spirits Fair로 행사는 이어진다. 나는 지금까지 무대에 올려진 공연만 봤지 무대 뒤편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눈으로 보질 못했다. 배우들이 무대에서 본인의 예술성을 마음껏 표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스태프들의 희생과 노력이 따라줘야 한 편의 작품이 탄생되는지 이번 대전 행사를 통해서 눈으로 보고, 조금이나마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적어본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130명 가까이 되는 심사위원을 접촉하는 것부터 국적별로 나누어 와인 심사에 공평성을 찾으려는 노력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이번 2016년도에 출품된 와인이 약 4,000종 가까이 된다고 한다. 4,000종의 와인을 나흘에 심사를 마치려면, 하루에 대략 1,000병 가까이 되는 와인을 시간에 맞추어 따야 한다. “아르바이트생 불러다가 따면 되지.”라고 생각하겠지만, 공정성을 위해 누구나 와인 병을 만질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 심사를 하는 심사위원조차 와인 병은 건들지를 못하는 게 규정이다. 허가 받은 다섯 명 정도만이 와인을 오픈할 수 있다. 더욱이 와인의 온도까지 맞추어서 준비를 하려면 “음~ 고생하네.”라고 단순하게 표현할 문제가 아니다. 레스토랑에서 11명의 단체 손님에게 같은 시간에 같은 온도에 맞는 음식을 서빙하기 위해서 쉐프들이 키친에서 얼마나 심장이 벌렁벌렁하도록 바삐 움직여야 하고, 프라이팬에 팔뚝을 몇 번을 데어야 하는지, 일해 본 사람은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KFC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튀김 닭을 먹기 전에, 손등에 기름 튄 직원들의 아픔이 먼저 생각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금년에 처음으로 팀 리더가 된 이승훈 소믈리에의 그룹(독일, 러시아, 중국의 심사위원들이 한국의 심사위원들과 같은 그룹에 속했다)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와인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입으로 하는 거라고. 이번 대전 와인심사 및 전시 참가를 한 것이 나로서는 두 번째다. 다른 심사위원들에게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내게는 생소한 와인을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만남의 무대이기도 하다. 이 글을 통해서 아시아와인트로피와 대전 와인 앤 스피릿을 위해 준비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보이지 않는 무대의 뒤편에서 잠 못 자고 분주히 움직이는 스태프들이 없었다면, 무대의 커튼은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WRITTEN BY 정민영 (Min Yo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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